서울과 평양, 두 도시는 정치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상징이지만,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공통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서울국제마라톤과 평양국제마라톤은 각각 남북한을 대표하는 국제 대회로, 전 세계 마라토너들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대회로 자리 잡아 왔다. 마라톤은 인간의 인내와 정신력을 상징하는 스포츠인만큼, 남북한의 역사와 감정을 대변하는 상징적 경기로도 여겨진다. 오늘은 서울과 평양 마라톤의 역사, 남북의 마라톤 문화 차이, 그리고 국제 대회로서의 위상에 대해 살펴본다.
서울국제마라톤의 역사와 세계적 위상
서울국제마라톤은 1931년 경성마라톤으로 시작된 이래,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마라톤 대회다. 특히 1990년부터 동아일보가 주최하며 ‘동아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고, 2002년부터는 IAAF(현 WA)로부터 골드라벨 인증을 획득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대회로 성장했다. 서울국제마라톤은 매년 봄,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코스로 진행되며, 국내외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는 대회다. 특히 2010년대 들어 한국 선수를 포함한 아프리카 출신 엘리트 러너들이 대거 출전하면서 세계적 기록 경신 경쟁도 벌어졌다. 이 대회는 한국의 도시 마라톤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아마추어 참가자도 수만 명에 이르러 마라톤 문화 대중화에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서울시와의 협력으로 도심 경관과 교통 통제도 원활히 이루어져, 해외 언론으로부터도 ‘도심 속 최고의 마라톤 코스’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양국제마라톤의 성장과 독특한 운영 방식
평양국제마라톤은 공식적으로는 ‘만경대상 국제마라톤경기대회’라는 이름으로, 김일성 생일을 기념해 매년 4월 초 평양에서 열린다. 1981년 처음 개최된 이 대회는 초기에는 북한 내 선수 위주로 운영되었지만, 2000년대 들어 외국인 선수의 참가를 허용하며 국제 대회로 변모했다. 특히 2014년부터는 외국인 관광객도 참가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서 전 세계 마라톤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색 대회’로 인기를 끌었다. 평양국제마라톤은 평양의 주요 상징 공간인 김일성경기장을 출발하여 평양 시내를 순회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시민들이 길가에서 응원하는 모습은 평양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북한 특성상 인터넷 중계나 실시간 결과 공개가 제한적이고, 경기 운영에 있어 외부와의 단절된 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대회 참가를 통해 북한 사회를 직접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평양마라톤은 국제 스포츠 외교의 한 형태로도 평가되며, 스포츠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남북 마라톤 비교: 문화, 기록, 그리고 교류 가능성
남북한의 마라톤 문화는 각기 다른 정치적, 경제적 배경 속에서 발전해왔지만, 인간의 기본적 도전 정신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정서를 공유한다. 한국은 스포츠 과학과 체계적 훈련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마라토너를 배출해 왔고, 국제대회 운영 역시 시스템적으로 정착되었다. 반면 북한은 엘리트 중심의 체제 속에서 국가적 상징으로서 마라톤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이봉주와 같은 국민적 영웅이 한국에 있다면, 북한은 정성옥과 같은 대표 선수들을 앞세워 국제 대회에서 체제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방식이다. 기록 측면에서도 한국은 IAAF 공인 기록을 꾸준히 경신하며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은 국제 공식 기록 공개 빈도가 낮아 비교가 쉽지 않다. 다만 스포츠는 정치적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실제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체육 교류가 논의되었고, 마라톤 역시 남북 공동 개최나 상호 초청 형태로의 확장이 논의된 바 있다. 특히 서울과 평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상징성이 강한 만큼, 향후 남북 마라톤 교류가 현실화된다면 스포츠 외교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결론
서울과 평양의 마라톤은 서로 다른 체제와 역사 속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모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정신력을 표현하는 스포츠로서 국민적 자긍심과 국제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 남한의 서울국제마라톤은 개방성과 기록 중심의 현대 스포츠로 발전했고, 북한의 평양국제마라톤은 체제 홍보와 민족적 자긍심 고취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 두 마라톤은 언젠가 하나의 코스로 연결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마라톤이라는 긴 여정처럼, 남북 간의 교류도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이어나간다면, 언젠가는 서울과 평양이 함께 달리는 날도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